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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졸한 작태는 하지마라

기고-(사) 인천시 서구발전협의회 회장 김용식

  • 입력 2021.03.18 15:41
  • 기자명 서울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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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옛날이야기에 빠져들던 어린 시절, 오금이 저릴 정도로 짜릿한 대목이 있었다. “암행어사 출두요” 이 한마디면 세상의 잘못된 것이 바로잡혀지고 억울한 사람은 누명을 벗게 됐다. 이처럼 암행어사는 우리네 할머니들이 손자들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의 단골 소재였다.
우리는 춘향전의 클라이맥스에서 정절을 구원하는 어사출두의 통쾌함을 익히 맛보아 왔다. 암행어사의 추상같은 호령에 일거에 사가 깨어지고 정(正)이 고개를 드는, 이른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풍경이다.
그러나 암행어사의 이름에서 서릿발만을 연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들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인정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았다. 작자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기문”이라는 책은 색무영웅(色無英雄)이라는 제목으로 함정에 빠진 어사의 얘기를 전한다.
평양기생 이화는 인물도 절색이고 시와 음악에도 일가를 이룬 미녀였던 모양이다. 평양감사가 이화에게 빠져 앞뒤를 못 가리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임금은 허 민 이라는 참판을 암행어사로 보냈다. 허민은 평양근교 주막에서 한 미녀를 만났다. 어찌어찌하다 운우의 정도 나누고 그녀의 팔뚝 위에 이름까지 새겨주었다. 이윽고 평양에 당도해 암행어사 출두를 외친 후 이화를 국문하자 그녀는 시 한수를 지어 읊었다.
“이화 팔뚝 위에 /그 누가 이름 새 겼 더냐/ 먹빛 점이 살에 스며/글자마다 선명하다”주막에서 만난 미녀는 바로 이화였던 것이다. 함정에 빠진 어사의 몰골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천리 길을 헤맸던 암행어사들에게 기문이 많았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겉에 드러나지 않는 암행의 부작용이었다.
요즘 LH 직원들을 비롯해 공직자 공공기관 직원과 정치인들의 부동산투기의혹에 국민들의 공분이 커지면서 합동수사 본부 신고 쎈타에는 제보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LH직원 말고도 공직자들의 투기정황이 만연하게 드러나면서 수사대상을 확대하고 차명거래 여부까지 수사하겠다고 한다.
암행감사가 국문한 이화처럼 토지투기자들이 권력자들을 물고 늘어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정부가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고 큰 소리 쳐봐도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이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부정부패는 고구마줄기에 고구마가 달려 나오듯 꼬리를 물고 자생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 윤리와 무책임으로 점철된 사회악이 일부정치인과 정보를 이용한 공직자들이 관련된 사건으로 비춰지는 모습에 국민들을 짜증스럽게 하고 있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기업하는 기업인이 권력을 넘보고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이 돈에 욕심을 부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부자가 돼보겠다는 허황된 꿈을 버리지 않는 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공직사회의 비리와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새로운 기강을 다진다는 명분을 걸고 대대적인 수사가 전국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모양이다.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에서 공직자들이 청렴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직사정은 불가결한 요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조사나 수사가 일회성으로 유야  무야 적당히 끝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가 모든 것을 이끈다.” 이 말은 아프리카의 가나 엔크르바 대통령이 한 말이다. 정치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는 외침일 것이다. 정치지도자가 개인적인 이해관계나 논공행상 차원에서 부적절한 인재를 등용하거나 특정집단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인다면 정의와 공기가 무시당하고 진실과 정의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고 불만과 불신만 가득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봐진다.
적어도 공직자의 신분과 어울리지 않는 치졸한 작태는 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 한동안 부정부패가 자취를 감추는가 했더니 또다시 불거지는 각종 부정부패사건이 터지자 국민들은 아예 할 말을 잃고 있다. 고기 맛을 아는 스님은 파계를 하게 되고 재물에 눈이 어두운 원님은 자기가 지어놓은 감옥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교훈으로 삼고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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