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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우크라이나’ 15년 선교사역에 대한 감회와 각오

칼럼 / 우크라이나 김태한 선교사

  • 입력 2019.12.27 15:16
  • 기자명 서울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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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 15년을 살며 사역했다. 감사하다. 길을 걷다 보면 때로 기이하게 느껴진다. 저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다니.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살고 있다니. 이곳에서 선교사로 살아왔다니. 우리를 이곳에 보내신 주님의 계획이 경이롭기만 하다.
 
2000년대 초반, 일산 세광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겼다. 힘들지만 좋았다. 비슷한 연배의 형제 목사들과 팀을 이루었고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부담이 있었다. 영국으로 유학을 가기 전에 아내와 다짐했던 선교사역. 이 말을 여러 번 반복했더니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가는 것이지 당신이 간다고 해서 갈 수 있는가?” 맞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다짐했다. ‘마흔 살까지 선교지로 부르지 않으시면 이렇게 계속 목회를 하리라.’ 2003년 교회에서 우크라이나로 한 가정을 선교사로 파송했다. 이듬해 그 선교사를 통해 우크라이나 신학교가 한 주간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마지막 날 돌아서는 내게 백발의 노(老) 학장께서 부탁하신다. “김 목사님, 여기서 함께 사역하면 좋겠습니다” 그 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다. 아내와 상의하고 교회에 요청해서 3개월 만에 파송을 받았다. 그 해 나이가 마흔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선교. 2004년 가을, 아내와 어린 세 아이의 손을 잡고 우크라이나에 도착했다. 두려움에 집안에서만 지냈던 첫 주. 그리고 한 해, 두 해. . 강산이 변하고 몇 년이 더 흘렀다. 황금기 40대 동안 선교로 드리겠다고 약속했는데 주님은 이 자리에 더 머물게 하셨다.
  
시간은 빠르다. 아이들은 훌쩍 자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나 진학했다. 공항에서 아이를 짐과 함께 떠나보낼 때 안타깝고 아팠다. 첫 아이를 보내고 많이 울었다. 이듬해 둘째를 보낸 후에 아내는 가슴이 아프다며 숨죽여 눕곤 했다. 우리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낯선 곳에서 홀로 지내야 했던 아이들은 오죽했으랴.

공부도 따라가기 힘들었는데도 아르바이트와 교회봉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몸이 가냘픈 둘째는 교내 식당에서 자기 몸집만한 주방기기를 씻는 일을 하루에 몇 시간씩 했다. 한 번은 첫째가 전화를 했다. “아빠, 잘 지내시죠?” “그래, 너는 어떠니?“ ”. . . “ 잠시 후에 울먹이더니 끝내 흐느껴 운다. 학생사감으로 일을 하던 중 선배로부터 오해를 받았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복잡한 관계의 벽을 넘기가 버거웠다. 참고 참다가 아빠에게 어렵게 전화를 하고는 아픈 마음이 터졌다. 대화하며 달래고 격려했더니 용기를 냈고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멀리 떨어져 도와줄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아이들은 외로운 중에도 믿음으로 성장했다. 참 부모이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채울 수 없는 부분을 은혜로 채워주셨다. 아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다. 선교지에서 힘든 시간을 함께 해준 친구였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어려운 시간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올 수 있었을까. 우리가 준 것보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준 것이 더 크고 소중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해서 외로울 틈이 없었고 곁에 있어 빈자리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 소중한 보물들과 보낸 시간을 추억할 때마다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지난 가을 첫째 딸이 교회에서 만난 청년과 결혼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주님께서 새 가정도 지키시고 아름답게 이끌어 주실 것을 믿는다.  

짧지 않은 길을 오는 동안 주님은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셨다. 현지에서 함께 살아갈 믿음의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셨고, 기도와 후원을 통해 먹이셨고, 사역할 수 있도록 공급해 주셨다. 이렇게 지내는 동안 어느새 우크라이나가 내 집이요, 고향이 되었다. 이따금씩 한국을 방문한다. 반가운 사람, 가족을 만나도, 좋은 자리에 있어도 돌아가고 싶은 곳은 우크라이나가 되었다. 이제 다른 곳으로 가는 일은, 다른 곳에서 살아갈 생각은 할 수 없게 되었다. 이곳에 내 집이 있고, 교회가 있고 주님이 주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선교는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다. 보내신 곳에서 살아가는 일이다. 거기서 주님의 일을 믿음으로 바라는 삶이다. 모든 일은 주님이 이루시고 이루어 가고 계신다. 그렇다. 모두 주님이 하신다!
 
선교사로 많은 분들의 기도와 사랑을 받았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와 후원자들의 지원과 격려가 없었다면 작은 일 하나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역에 동행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새벽마다 기도의 시간마다 손을 모아 간구해 주심에 감사드린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힘들게 일해서 얻은 수입의 일부를 기꺼이 떼어 선교자원으로 보내주신 손길에 주님께서 복과 은혜로 채우시길 기도한다. 한 해가 저물며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 선교지 우크라이나에 영적부흥과 주님을 아는 지식이 바다처럼 풍성해지길 간구한다. 모든 일을 이루시는 주님께 영광과 감사를 올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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